본당생태환경분과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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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영성 이야기 4

  • 유병숙
  • 2019-12-06 1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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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받으소서]와 함께하는 생태영성 이야기 4

집의 계보와 사목의 규모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찬미받으소서 1, 3, 13, 17, 53, 61, 155, 164 참조). 집에는 규모가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 혹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고, 마을 혹은 도시 혹은 나라라는 집이 있습니다.
선조들은 나라를 “國家”라고 표현하였으니 나라를 하나의 “집”으로 보았고, 온 세상을 집 “宇”에 집 “宙”를 써서 “우주(宇宙)”라 하였으니, 우주 역시 하나의 집으로 보았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오징어에게는 국경이 없고 두루미에게도 국경이 없습니다.
우주인들은 한나같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면 국경도 이념도 인종도 종교도 어느 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 푸르고 아름다운 둥근 행성이 보일 뿐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생태(生態)”라고 번역해서 쓰는 영어 ecology는 eco와 logy가 결합된 말입니다. eco는 oikos라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집” “거처”라는 의미이므로, ecology는 “집eco”에 관한 “logy”=“logos”=말=이야기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생태”란 단순히 자연에 관한 혹은 환경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집”에 관한,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이나 생물은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이해와 행동이 통합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람 중심주의에 머물지 않으시고 환경과 자연을 통합하고 사람과 사회를 비롯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합해서 제시하신 하느님의 집안 살림 중심의 “깊은 통합 생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집을 지으시고 당신의 사랑을 받아 살 당신의 만물을 창조하셔서 당신의 집에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도 당신 꼴로 창조하시고 당신 숨을 불어넣어 당신의 창조물들과 함께 살면서 당신 사람으로 당신의 집안 살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이것이 그분의 생태살이, 그분의 집안 살림을 설명해 준다고 믿습니다.
여기 집들을 보여 주는 한 사진이 있습니다. 기와집 한쪽 끝이 보이고, 그 뒤로 하늘과 나무들이 보이고, 한 나무에 까치둥지가 있습니다.
까치 한 마리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한 마리는 밑에서 날고 있습니다. 까치집과 기와집, 그리고 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집 마당에 개가 사는 집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사람집은 까치집이나 개집과는 다릅니다. 존재의 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 보면, 까치집은 나무에 지어져 있고, 나무는 땅을 집으로 해서 존재합니다. 땅은 까치에게 집의 집의 집인 셈입니다. 사람이 사는 기와집은 땅 위에 지어져 있으니, 사람의 집의 집은 땅이 되고, 개집 역시 땅을 바닥삼아 존재하니, 개의 집의 집 역시 땅입니다. 집의 계보를 따라가 보니, 까치와 개와 사람이 한 집, 땅 위에서 땅을 집 삼아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집을 어떻게 알고 그려 가는지에 따라서 가족과 친구의 규모와 사목의 규모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바닥, 우리의 집의 규모는 어떤지요? 자신의 바닥을 알고 살아가는 태도와 규모에 따라 하느님의 집안 살림에 참여할 가능성과 역동성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집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시고, 당신의 집에 사는 것들과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당신 성령의 빛과 손길 안에서요, 주님.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자문위원 황종열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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