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3주간 금요일 / (2022.12.16.)
요한 5,33-36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제목: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
찬미 예수님!
오늘은 제 14번째, 보문산 도시여행 인프라 조성사업 중단 촉구 거리미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몇 달 만에 함께 하는 것 같은데요. 지난 4월 14일 봄날, 1차 거리미사를 시작으로 벌써 겨울이 되었습니다. 2년 전 세종 환경부 앞에서 거리미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날도 추위가 심해서 손 씻을 물부터 성혈까지 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순리가 있잖아요. 심한 추위는 잘 피하고, 과하다 싶으면 줄이고, 힘들면 쉬는 게 자연스러울텐데요. 그런데 자본의 논리는 그런 순리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시금 설명드리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한한 성장을 기본으로, 끊임없는 소비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는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데요. 그렇게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뭔가를 건설하고 발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대전시에서 추진하려는 보문산 개발사업이나 새만금의 신공항, 도처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 등의 자본주의의 관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요.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아무리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할지라도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지구가 도대체 몇 개인가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에너지를 낭비하고, 그러니까 전기나 수도, 물품을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면 지구가 3.3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 창 뜨고 있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생활한다면 과연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을, 같은 욕망을 가진 누군가가 누린다고 하는데 막을 수 있을지? 아니, 그러면 과연 지구가 이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대림 3주간 금요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이 특별히 대림기간을 지내면서 2,000년 전 나약한 모습으로 힘없는 나라, 가난한 가정으로 오셨던 아기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아울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세상의 눈으로 철저하게 실패하신 그 예수님의 재림,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대림을 지내며,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면서, 과연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이, 그분이 맞는지 묻는다면, 과연 우리는 오해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정말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 증언을 통해서 만족하고 있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어쩌면 지금 일상 안에서 신앙의 범위 안에서 만족하고 어쩌면 타협하고 있는 기존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피해주지는 않으니, 내가 뭘 더 할 수 있는가, 더 큰 오해가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것을, 그분의 나라,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큰 차원일 것입니다. 당연하다,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를 지내면서, 그 안에서 자족과 즐거움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을 더 세심하게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로 잘 산다는 것이 뭔지, 정의의 실현, 자유롭게 그분을 만나는 것이 뭔지를 따져보며, 성탄을 잘~ 준비, 정의롭고 생태적인 발전, 진짜 발전이 뭔지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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