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연합회 JPIC분과 생명평화순례 새만금신공항 철회 촉구 거리미사>
40여분의 수녀님들께서 3박 4일의 생명평화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세종시 환경부 앞 새만금신공항반대 천막농성장에서 피케팅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의 신성수 베드로 신부님의 주례로 강승수 요셉 신부님, 박성재 엠마누엘 신부님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되었습니다.
“‘나는 광야에 길을 내리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처럼 광야같은 이 땅에 길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가면 이 좁은 길도 넓어질거라는 생각합니다. 걷기만 한 도보 순례는 아니였습니다. 아픈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고 찬미를 드릴 수 있었던 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하신 물으심에 우리는 예수님께 구체적인 기도로 응답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조경자마리가르멜수녀님께서 여정의 소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강승수 요셉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 정녕 나는 광야에서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9)
순례 중에 희망을 보셨나요?
광야에 나 있는 길을 찾으셨습니까?
수녀님들의 생명평화순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고 그래서 광야에 길이 날 것이라 믿습니다.
수녀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생태적으로는 사막과 같은 대한민국에 생명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전환하게 만들어주는 한겨레 칼럼을 보았습니다.
“최근 기후활동가들이 예술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영국·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이 석유 반대 운동의 무대가 된 것. 시위자들은 고흐의 <해바라기>,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명화에 액상 토마토나 케이크를 투척하고 액자에 몸을 접착한 뒤 이렇게 외쳤다. “소중한 작품이 공격받는 걸 보는 기분이 어떤가? 지구가 공격받는 것은 괜찮은가? 인류의 미래를 죽이는 화석연료를 당장 금지하라!” 즉, 그들이 ‘공격’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 우리의 무관심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정체된 기후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여론의 주목을 끌어내려는 계산된 행동이었기에 작품 자체는 훼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류 여론은 ‘경악스럽다’ ‘과격하다’는 반응이고, 대부분의 활동가는 체포되어 재판 중이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치가들은 이런 ‘과격’ 시위를 강하게 처벌하는 신속한 법안 발의를 약속했다. 한시가 급한 기후위기 대응이 한없이 지체되는 걸 보다 못해 일어난 시위를 근절하는 것이 당국에 가장 시급했던 모양이다.
함부로 다뤄지는 자연과 보물 취급받는 예술을 비교한 발상이 처음은 아니다.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의 창립자 폴 왓슨은, 심해를 무참히 파괴하는 트롤 어업을 이렇게 비판했다. “누가 루브르박물관에 포클레인을 끌고 들어가 작품들을 박살 낸다면 당장 감옥에 갈 것이다. 전세계 바다와 밀림에선 그런 일이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처벌은 커녕 정부 지원을 받는다.” 길어야 수천년인 미술사에 비해, 수억만년의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자연이란 작품에 대해 우리가 무지하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인공물과 자연물에 대한 가치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를 이유가 있을까?
이번 시위는 예술품의 의미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만든다. 사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작품의 경우, 진품 훼손 여부는 일반인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 부유한 미술관, 혹은 탈세를 목적으로 미술품에 투자한 억만장자가 손해 볼 순 있어도 말이다. 이미 최고의 3D 기술로 기록되어 있고, 셀 수 없이 복제/재생산되어 누가 마음먹고 파괴하려 해도 전세계인의 기억에 수천년은 남을 것이다. 게다가 원화를 구경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그나마 경호원, 보호 유리, 인파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원작을 정교한 복제품으로 바꾸면 대다수는 눈치도 못 채고 똑같은 감흥을 받으리라.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인류의 문화유산들은 아주 잘 있다. 문제는 자연유산, 특히 ‘돈 안 되는’ 것들이다. 6대 멸종 시대로 칭할 만큼 수많은 동식물이 인간의 끝없는 개발 행위 때문에 파괴되는데, 이런 만행에는 왜 경악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시위에 찬성하는 거냐고? 내게 권한이 있었다면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 동시에 예술의 급진성을 부활시킨 공로로 상이라도 주고 싶다.”
100%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이 대멸종의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 마치 주일에 성당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생활을 하는 것만큼이나 피조물을 보호하는 일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소가 줄어서 다들 걱정을 많이 합니다.
교회 건물만 거룩한 곳이라고 말한다면 걱정할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에서 “만유재신론”을 강조하십니다. 세상 모든 곳에 하느님이 아니 계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합니다”(69항)
그러니, 그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만나러 수녀님들처럼 자주 교회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도 살고 세상도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수녀님들처럼 생태학살의 현장에 가서 보고, 망가지고 있으나 아직도 아름다웁게 펼쳐져 있는 하느님의 빛을 만나기를 지속해야 합니다.
앞으로 해마다 이런 여정이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거기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을 만나는 길이 생겨날 것이고, 그 길을 따라 많은 이들이 따라 나서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일단의 길을 내주신 수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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