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산 난개발 저지 거리미사강론
- 강승수
- 2022-12-31 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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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입니다. 시민들에게 봉사하라고 쥐어준 권한을 자본과 결탁해서 소수에게만 자유롭고 자본에게만 이로운 사회로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함께 살자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대결하고 맞서자 ‘한판 떠보자’하는 말이 횡행하여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식구들의 ‘야반도주’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왕인데 장차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은 헤로데가 그 아기를 죽이려 하니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멀리 외국으로 도망을 갔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가정으로 추앙하고 있는 이 가정은 문제가 참 많은 가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가혹한 세상이어서 성가정의 가장인 요셉은 해산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아내와 아기를 위한 변변한 방 하나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한 여인의 삶으로서 어머니 마리아 또한 기구한 일생을 사셨던 분입니다. 그 처녀의 몸으로 잉태 했지요. 그래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 처했고, 약혼자가 부정한 여인으로 오해하여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뿐 아니라, 아이를 동물들이나 머무는 마구간에서 낳아야 했습니다. 남편도 먼저 떠나가고 홀몸으로 자식 하나를 키웠는데 그 자식 또한 장성하고도 장가를 못 가고 허구 헌날 돌아다니며 사람들한테 욕이나 먹고 결국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사형수의 어머니가 되어 아들의 죽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 처절하게 죽어 가는 아들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말 그대로 한 많은 여인이었지요.
아들 예수는 또 어떻습니까?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이렇다 할 직업도 없었습니다. 몸 바쳐 사랑했던 12명의 제자들에게 모조리 배신을 당하고 죽음의 길로 내몰려 갔던 사람이 예수님이었지요. 이렇게 세상의 문제란 문제는 모조리 안고 살았던 가정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었습니다.
보통의 시련과 난관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겪어낸 가정입니다.
지금 오늘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이태원 참사를 생각해 봅시다.
헤로데처럼 예수님 또래의 죄없는 아이들을 찾아가 죽여버리지는 않지만 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죽여버리는 결과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대전 시장은 공공연하게 시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가지고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데 사용하려는 지향보다는 개발이라고 쓰고 있지만 알고보면 “생명 학살”, “생태 학살”인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일은 계속되고 있고 학살은 여전히 그들의 주된 업무가 되어 있습니다.
하여, 우리는 지금 그들의 만행을 기록하고 하느님께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의 만행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저들이 우세한 듯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기도와 외침이 계속되는 한 역사는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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