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9주일 8월 7일(다해)
대전주보 3면 ‘공동의 집’
오현화 안젤라(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기후 위기 감각하기
제가 기후 위기 내지는 기후 행동 강의를 할 때 청중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의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시나요?” 1점에서 5점까지 중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3점 내지는 4점을 고릅니다. 심각하긴 심각한데, 아직 극단적으로 심각한 건 아니라고들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거죠.
올 한해 전 세계에서는 각종 기후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쪽에선 폭염이 한쪽에서는 홍수가 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연일 폭염특보가 발효되고 있고, 낮시간 뿐 아니라 밤에도 에어컨 없이 잠을 자기 힘든 하루하루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기후 위기를 얼마나 감각하고 있나요?
작년 상반기 일주일에 한 번씩 세종시 환경부 앞에서 제주 제2공항 반대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어느 무더운 날 평소처럼 피켓팅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휘청 하면서 눈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늘 아래에 있었는데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근처 카페에 쉬러 들어갔습니다. 작은 카페는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버스정류장에서 쓰러진 어르신을 구급대원이 응급처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하루의 경험으로 1) 기후 재난의 피해자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 2)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느긋하다는 것을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를 감각하기 위해 반드시 극한의 날씨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밥상에서, 시장에서, 텃밭에서 기후 위기를 감각합니다. 이 감각과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했을 때 비로소 사회적인 감각이 되고, 여기서 우리는 의식과 삶의 전환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동료들, 공동체, 본당 식구들과 함께 우리가 감각한 ‘나의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공동체가,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합시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갑시다. 오늘의 기후 위기는 누군가 대신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움직일 때 공동체가 움직이고 사회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정보 축적이나 호기심 충족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찬미받으소서 19항)
▪️연중 제19주일 8월 7일(다해)
대전주보 3면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소변을 봅니다. 물을 내리려다 멈칫합니다. 그리고 변기 속 물의 색을 관찰하다가 물을 내리지 않고 다시 덮개를 덮어 놓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한 번에 흘려보내는 물의 양은 5ℓ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도 정화 처리된 수돗물 5ℓ는 어려운 이웃 나라의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사용하는 물의 양과 같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일 내가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국민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지금처럼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만약 내가 흑인으로 태어났어도 세상을 안전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을까?
정의롭지 않습니다.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찬미 받으소서 49항)’은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연중 제19주일 8월 7일(다해)
청년주보 제167호 4면 ‘찬미받으소서’
오현화 안젤라 위원(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제4장 통합생태론 IV. 공동선의 원리
통독: 회칙 156-158항
지난 3주 동안 환경,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의 생태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는 분도 계실 거예요. ‘헐, 그냥 전부 연관되어있다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91항)”라는 메시지를 여러 측면에서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보호는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91항) 즉, 환경보호를 뚝 떼어서 다른 사회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길가에 쓰레기를 줍는 것을, 착한 일,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도 쓰레기를 버리는 건 나쁜 일이고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쓰레기를 주워야 하는지, 그 쓰레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으로 쓰레기가 어쩌다 발생했는지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고가 확장됩니다. 다시 말해, 자원의 착취, 생산, 소비의 과정을 생각하다보면 인간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통합 생태론은 사회 윤리에서 핵심적이고 통일적인 원리인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156항) 그리고 공동선은, 자신의 통합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인간의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157항)
기후위기와 가난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은 같은 시스템에서 착취당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거듭 “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행위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피조물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성찰하고, 더 큰 연대로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핍박받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함께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입니다. 이 긴 여정에, 여러분도 함께 하시기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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