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7월 24일(다해)
대전주보 3면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어떤 과제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하느냐’로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느냐’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무엇을 ‘하느냐’로 이어질 때 해야할 것을 ‘바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존재는 존재를 통하여 드러납니다. 곧 자신의 존재를 통하여 타자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긍정으로 확인되고 실현됩니다. 자신과 이웃인 타자 그리고 하느님 사유의 산물인 모든 피조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을 기억합시다. “‘유용성’보다는 ‘존재’가 우선한다(찬미받으소서 69항).”
열심히 일합니다. 피켓팅, 세미나 그리고 거리 미사에도 참여합니다. 무엇을 ‘하느냐’로 바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곳에 현존하는 나는 무엇이 ‘되고 있는가’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무엇이 된 존재의 지금 여기에서의 구체적 행위로 완성됩니다.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7월 24일(다해)
청년주보 제164호 4면 ‘찬미받으소서’
오현화 안젤라 위원(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제4장 통합생태론 II. 문화 생태론
통독: 회칙 143-146항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 국가들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정치적, 경제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점령지의 자원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무분별하게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 역시 무너졌습니다. 이들은 살아갈 땅을 잃고 고유한 문화, 때로 언어를 잃어버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수탈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식민지 지배가 국가 내에서 경제발전을 내세운 개발주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과거 수탈 대상이 되었던 국가에 때로 더욱 가혹하게 경제 논리에 의한 파괴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여러 형태의 철저한 환경 착취와 파괴는 지역 공동체의 생계 수단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과 더불어 생존과 공동생활의 의미를 오랫동안 보존해 온 생활방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 구조들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145항) 따라서 아마존 삼림의 파괴는 전지구적인 문제인 동시에 그 지역에 사는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 세기 전 이전의 과거나 지구 반대편의 아마존까지 가지 않더라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개발에서도 마찬가지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한 지역의 개발을 위해 지역주민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획일화된 규율이나 기술적인 개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지역적 문제들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습니다.(144항) 예를 들어 송전탑 문제로 밀양의 “할매”들이 투쟁한 것은 단순히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삶이 무어 그리 지킬 것이 많냐고 폄훼할 수 없습니다. 삶의 질에 대한 개념은 강요될 수 없으며, 각 인간 집단의 고유한 상징과 관습의 세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144항)
대전 역시 도심 재생화와 재개발의 흐름 속에서 많은 지역이 정비되고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없애고 반듯한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이 성공한 개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존재하는 문화를 굳이 과거의 기념물로 박제해야만 더 나은 발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개발의 방향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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