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주일 7월 3일(다해)
대전주보 3면 ‘공동의 집’
신소영 레지나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
성장말고 생명
작년에 개봉한 ‘퍼스트 카우’는 1820년대 미국 서부, 초기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공유자원이였던 땅과 자원을 빼앗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약탈자들이 정작 개인의 자원인 젖소의 공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공동 재산인 토지, 숲 그리고 강과 같은 필수 자원들을 자본가들이 폭력적으로 사유화하고 그 사유화한 재산을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해 식민지 수탈과 함께 노예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태계는 균형을 잃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결코 점진적이거나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의 수탈의 과정이었습니다.
분기마다 뉴스와 신문들은 국내총생산량(GDP)의 성장률을 흥분해서 보도합니다. 모든 국가 산업과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하고 GDP 성장만이 빈곤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우리의 삶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속삭입니다. 좌파 우파 정치인들도 단결하여 성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모두가 강박적으로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GDP 성장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하게 되고 쓰레기를 쏟아내며 생태환경의 파괴를 초래합니다. GDP는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 이야기할 뿐, 그 활동이 얼마나 유용한지 파괴적인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갯벌을 콘크리트로 메우고 공항을 지으면 GDP는 올라가지만,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파괴나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갯벌의 손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자본축적만을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성장주의입니다. 성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각만큼 과격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와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금하고 불평등을 줄여 소득을 보다 공평하게 분배하고 공공 서비스에 투자하는 것 다시 말해 자본의 끝없는 축적 대신 인간 행복의 증진과 생태계와 균형을 이루는 ‘탈성장‘입니다. 탈성장은 덜 취하는 도전의 과정에서 시작하지만 우리를 풍요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그 풍요의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빈곤이 종식되고 열대우림은 다시 자라나 생명이 약동하고 맑은 강물이 흐르며 토양이 되살아나는 치유와 회복의 세상말입니다. 지금은 꿈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꿈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연중 제14주일 7월 3일(다해)
대전주보 3면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보니 참 좋았습니다”(창세 1, 31).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히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인격”입니다(찬미받으소서 65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 사유의 산물입니다(찬미받으소서 65항).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을 즉흥적으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 사유의 산물이라면, 사람과 연결된 존재로 창조된 이웃 생명은 하느님 즉흥적 산물일까요?
생명은 다른 생명의 도움으로 유지됩니다. 그리고 지구 공동체에서 모든 존재는 자신의 역할과 존엄성 그리고 자생성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연중 제14주일 7월 3일(다해)
청년주보 제162호 4면 ‘찬미받으소서’
신성수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고용 보호의 필요성
통독: 회칙 124-129항
지난 유행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혁명이 있습니다.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이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간단히 기술혁신을 통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연결이라고 정리하고 싶은데요. 그래서인지 시공간을 뛰어넘는 무대가 등장하고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기술들이 일상생활에 이미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큰 문제로 다가오는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인간의 노동입니다.
노동을 직업, 일자리, 고용 등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먹고 살아가는 방법으로만 접근한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대체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가 굉장히 위협을 받게 됩니다. “온갖 형태의 노동은 우리가 다른 존재와 맺을 수 있고 또 맺어야 하는 관계의 개념을 전제로 합니다.” 회칙 125항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 노동을 또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차원으로 설명합니다. 베네딕토 수도회에서는 기도, 영적 독서와 더불어 육체노동을 영성 생활의 큰 바탕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환경 영역에서도 일자리와 관련된 문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도 있지만, 환경오염과 관련해서 빚어지는 문제도 엄청 심각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일상에서 편리하기 생활할 수 있는 전기 에너지의 대부분은 화석연료를 통해서 얻고 있는데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기존 산업 분야에서 종사하는 이들의 자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고용 보장을 위해서는 생산의 다각화와 기업의 창의력을 고무하는 경제의 증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중략) 행정 당국은 군소 생산업자들과 그들이 생산하는 품종의 다양성을 투명하고 확실하게 지원하는, 조치를 취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회칙 129항에서는 안정적이고 품위있는 활동을 위해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후위기를 위한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뿐만 아니라, 기존 업계의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미리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거죠. 즉, 나라와 기업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개개인의 목소리도 필요한데요. 하느님 창조 질서가 조화롭게 이어지도록! 현실의 부조리를 하느님의 정의로 연결시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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