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3월 13일(다해)
청년주보 제146호 4면 ‘찬미받으소서’
신성수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프란치스코의 호소
통독: 회칙 10~16항
프란치스코! 과거 우리나라에서 철수나 영희, 지영이, 지훈이 같은 이름이 흔했듯이 외국에서 널리 쓰이는 이름으로, 프랑크족 사람 또는 프랑스인이라는 뜻인데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기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가 사업차 프랑스를 다녀왔는데, 그 동네의 매력 때문인지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붙여줬다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도 연상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어떤(?) 이미지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늘날에도 추앙받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중세 때 기울어가는 가톨릭을 일으켰던 큰 인물입니다.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유의 섬세함, 세심한 시선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피조물과 함께 지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는 건 다르지 않지만, 성인의 시선은 언제나 소박한 일상,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했던 순례자로 지내셨는데요.
지금 교황께서는 로마 주교로 선출되시며 그런 모습을 ‘길잡이요 영감’으로 삼으셨습니다. 물질문명, 과학기술이 발전한 시대를 지내시며 성인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의 ‘경외로움’을 바라보고자 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성인께서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기울어가는 교회, 종교의 역할을 새롭게 회복하고 계신데요.
이렇게 회칙 10~16항에서는 두 프란치스코의 시선으로 지금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예전 회칙에서는 ‘개인적 권유’라고 나와 있는데요, 개정판에서는 ‘저의 호소’라고 다시 번역했습니다. 영어로 my appeal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적 권유라면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이라면, ‘저의 호소’라는 표현에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자는 누군가의 간절함을 느껴지는데요. 그러니 통독을 하신다면 꼭 개정판으로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생태적 감수성’은 회칙에서 손에 꼽히는 핵심주제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뭘 보고 가슴이 뛸까요? 무관심이나 쿨~ 한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여러분은 뭘 보고 감탄할지 궁금합니다. 불과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그런 눈빛은 아니었을 겁니다.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했던 그런 감수성으로 자연을 보자는 초대입니다. 스마트폰 스크린 말고 말이죠~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이 지나고 본격적인 봄의 새싹을 기대하는 요즘입니다. 암울하고 우울해도 시선을 자연으로 돌리면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호소에 공감한 저의 호소가, 이제 여러분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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