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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흔적 앞에서”/황종렬 레오_2020.06.10

  • 관리자
  • 2020-07-03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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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흔적 앞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하느님의 흔적을 갖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신학적 진리를 로마서 서두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1, 20).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영성적 실재를 우리의 기도와 연결해서 이렇게 명확하게 진술하십니다. “피조물들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더 잘 이해하면 관상이 더 완전해집니다”(찬미받으소서 233항).
하느님의 존재로서 수도 생활에 헌신하고 싶어하는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수녀원을 만든다면 공동체 회칙을 어떻게 제시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삼위일체 하느님 관상과 창조물 관상을 하나로 이어 놓고 온 창조물에 대한 공감과 공명을 역설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깊이 관상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관상하듯 함께 사는 자매들을 관상하고, 예수님을 관상하듯 자연과 모든 피조물들을 관상하고, 성령을 관상하듯 무생물들을 관상할 것입니다. 그들 각각의 숨 안에 과연 우리 주님의 숨이 들어있으니 어찌 그들이 존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매들은 모든 존재들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사벳 베일리 씨튼 수녀님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 안에 있으면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성적 실재를 이렇게 아름답게 노래하십니다. “오 당신께서는 지상의 권능을 지니고 당신의 뜻이 아니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지극히 미약한 벌레에게도 생명과 즐거움을 주시니; 당신의 피조물이 당신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축원하게 하시며, 제 영혼이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전집 제 1권 상, 370).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 학기를 마쳐가는 중입니다.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마스크를 끼고 네 시간 정도 이동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의를 하고 다시 네 시간 정도 돌아올 때, 작년과는 다른 몸 상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숨이 무엇인지 너무도 깊게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물에 담긴 하느님의 흔적과 초대는 무엇인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6월 10일 현재 벌써 700만 명 이상 감염되었고 이로 해서 사망한 사람만 40만 명이 넘습니다. 마스크 착용 실천과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라는 표현과 의식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 가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가는 중입니다.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의 흔적을 갖는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하느님 이외에는 모두 안과 밖, 겉과 속, 어둔 면과 밝은 면이 있습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살리는 면과 아프게 하는 면을, 하느님의 흔적과 동시에 하느님의 흔적을 흐리게 하는 면을 동시에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존재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자기가 겪는 것으로 그 존재의 전부를 판단하는 독단을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영의 깊이와 침묵이 요청됩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존재의 실상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 큰 것, 거대한 것, 높은 것, 강한 것 등을 중심으로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 온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상황 앞에서 보이는 것, 큰 것 중심으로 살아 왔던 날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 작은 것들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과도 함께 살 줄 아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이런 시대를 우리 신앙 공동체가 함께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것, 작은 것, 낮은 것, 바닥에 있는 것, 힘없어 보이는 것 등도 있는 그대로 존재로서 포용하고 이런 존재들과 함께 살 줄 아는 온유가, 그리고 사람과 생명과 존재들의 상호 연대가 기본이 되는 때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행위 중심과 성장 중심 시대에서 함께 머물 줄 알고 공유와 공명을 존중하는 시대로 이행해 가는 것이 요청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자기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신뢰이고 한 어머니요 한 아버지이며 한 임금이시요 한 주님이신 하느님의 살리심에 대한 깊은 신뢰일 것입니다. 씨튼 수녀님은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아버지 하느님의 돌보심을 실재로 체험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아버지, 당신의 자비는 얼마나 광대한지요! 얼마나 위대하시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지요. 저희는 당신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합니다―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운명이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저들은 당신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전집 제 1권 상, 370).
베일리 씨튼 수녀님은 하느님의 이 돌보시는 사랑이 무한함을 감지하여 하느님을 거슬러 살고 우리를 아프게 하는 존재들까지 포용하는 사랑의 돌보심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로서의 보살핌이 온 인류를 감싸고 있습니다―당신의 선하심은 공평하시기에 당신의 태양은 당신을 거스르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도 떠올라 끊임없는 축복을 내려주십니다―당신의 명으로 이슬은 대지를 새롭게 만들고, 산들바람은 저희를 시원하게 해주고 소생시켜 줍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십니다. “당신의 선물은 당신 피조물들의 필요에 맞추어 배분되지만,” 그분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이들은 그분께 열린 존재들이라는 것을요. 그리하여 그분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오직 ‘의인들’만이 당신의 평화가 주는 유익하고 감미로운 열매들을 맛보게 됩니다”(전집 제 1권 상, 370).
하느님의 살리심에 대한 바로 이런 깨달음이 씨튼 수녀님을 고통스럽게 하였던 그 모든 관계들에 대해서 수녀님이 보여주신 온유한 그러면서도 굳건한 응답의 원천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이 사랑 안에서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선인과 악인, 의인과 불의한 이 모두,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까지도, 하느님의 “우주적 가족,” “우주적 형제”로서 그분의 하나의 “공동의 집”에서 “우주적 친교”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서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신 분 하느님의 흔적을 알아보는 아름다운 영들이 모여서, 부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시대를 새로운 창조의 때로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창세 2, 15).
(사랑의 씨튼 수녀님들이 만드시는 씨튼 가족 2020년 6월 여름호에 실릴 내용입니다. 페친 여러분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의 손길 안에서 이 여름 코로나와 무더위 속에서도 코로나와 함께 무더위와 함께 부디 아름다운 날들 맞으시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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