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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나대로...

  • 임상교
  • 2019-10-17 16:45:16
  • hit114
  • 118.34.3.74

‘만남 그리고 이별.’ 살아 있어서 아니 살고자 한다면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만남과 더불어 이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만남을 준비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죽음을 생각하면서 삽니다. “어떤 상태로 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허락된 광대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인정된 광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무게에 허리가 꺾여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렇게 살면서 타인에게 웃음을 제공하고 단지 몇 사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범적 인간. 혹자는 그들을 가르키며 말합니다. ‘성실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의 성실함은 주어진 범위 안에서의 성실이고, 그들에게 법은 허락된 범위 내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도록 그들은 바쁘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살 수 있어서 생각할 시간 없이 삽니다.

 

생각할 시간 없이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지난 시간의 경험이 지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덕으로 많은 돈을 벌었던 자들은 이제 더 많은 돈을 쌓아놓기 위한 큰 창고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치가라는 명함으로 누군가는 기업인이라는 명함으로, 그 누군가는 그들의 그림자로 살면서 축적의 동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 또 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종교인이라는 명함으로 동맹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아프고 신음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부정의한 자에게 지극한 자비를 베푸는 고위성직자의 성스러운 고집이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를 더 곪게 만드는 오늘, 묻게 됩니다. “허락된 광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길 위의 예수를 만납니다. 허락된 광대로 살지 않으셨던 예수. 자유로운 영혼과 온몸으로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 그분은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가난해서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셨고, 그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분은 화려한 옷을 입고 궁전에 머물지 않으셨지요. 그분은 누구의 그림자로 살지 않으셨고, 바리사이들에게는 불같은 진노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셨습니다.

 

길 위의 예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예수를 찾습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은, 예수는 어디에 계실까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예수를 찾고 만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찾고 살아봐야지요. 행복한 오늘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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