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찬미하여라 32항.
이른바 ‘능력주의’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능력주의가 모든 것이 복종하여야 하는 ‘정당한’ 인간의 힘이자, 발전하기에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지배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노력의 가치와 고유한 능력의 신장과 칭찬할 만한 진취적인 정신에 대한 건전한 접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능력주의는 더 큰 권력을 지닌 소수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 방어벽으로 쉽게 전락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타락한 논리를 따라서 자신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은 경제적 자원이라는 갑옷을 입고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공동의 집에 입히는 피해가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설명 :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친히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수난하시고 돌아가심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황금률(마태 7,12)에 바탕을 두고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사랑의 새 계명을 실천합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세상의 문제와 이웃과 자연을 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로 2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 잡은 기술 지배 패러다임과 인간 중심주의는 능력주의에 편승해서 “더 큰 권력을 지닌 소수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 방어벽으로 쉽게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후 위기에 대응할 힘과 권력을 지닌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공동의 집에 입히는 피해가 막대하면서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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