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시민을 주권의 담당자로 한껏 끌어 올리면서 동시에 지속적으로 그 주권을 약화하는 심리적 압박을 주는 이상한 종류의 심리-정치체제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의 심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거기서 비켜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희생의 경험을 이해하려는 언어를 갖지 못하고, 희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낯선 이들’로 만든다. 그 방식이 차별과 배제다. 모든 종류의 차별은 공동체가 차별받는 당사자에게 자행하는 테러와 같다. 내가 누구가 아니라서, 혹은 내가 누구라서 받는 증오와 혐오는 상실과 분노와 같은 극심한 내적 갈등을 일으키며 나에게 말할 수 없이 깊은 손상을 끼친다. 이것은 희생이다.
이번에 제안된 '차별금지법안'에는 유엔 인권선언에도 나오고 한국 헌법에도 있는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이들, 낯선 이들이 누구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성별, 장애,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상실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때문에 숨죽여 살며, 실망과 상실 속에 지내는 이들이다. 하나하나가 가슴 아프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우리 안팎의 다른 모습들과 친해질 수 있는가. 우리가 품고 사는 하느님나라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 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과 매혹이다. 이를 손에 잡히도록 구체화한 것이 ‘공동선’이다. 공동선은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하고, 보다 쉽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적 삶의 조건의 총체”('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26항)라고 하는데, 허튼 트집을 잡아 공동선을 허구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기사 출처
공동선을 허구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_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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