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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활동
본당생태환경분과장 및 분과원, 생태환경에 관심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영성과 환경에 관한 심화교육
함께하는 생태적 회개 : 쓰고 버리는 문화
- 금고동 자원순환시설 견학
’2022년 창조시기'의 마지막 날인 프란치스코 성인 기념일에 대전가톨릭대학교 다섯 명의 부제님이 ’함께하는 생태적 회개’ 프로그램으로 대전시 금고동에 있는 ‘대전 자원 순환단지’를 방문했습니다.
‘대전 자원 순환시설’은 위생매립장, 바이오에너지센터 그리고 환경에너지 종합타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소 위생매립장은 실내에서 영상으로 견학을 했는데 이번에는 전망대에서 직접 위생매립장 전체 규모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위생매립장’은 대략 12만평의 대지에 대전시 발생폐기물을 매립하고 있습니다.
대전바이오에너지센터’는 일일 평균 200톤의 음식물류폐기물과 200톤의 음폐수를 처리하여 바이오가스로 생산하는 곳입니다. 센터 측은 이물질로 인해 설비가 자주 고장나므로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환경에너지 종합타운’으로 폐기물을 가연성과 비가연성으로 분류하여 비가연성 폐기물은 매립장으로 보내 매립하고, 가연성 폐기물은 소각하여 열에너지로 회수합니다. 당일 신일동 소각장의 설비 고장으로 전량 자원순환단지로 들어왔고, 4000톤 규모의 폐기물처리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규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으며 놀랍고도 슬픈 쓰고 버리는 문화의 현장이었습니다.
다음은 자원순환단지를 견학한 부제님들의 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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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울부짖음 한선구 사도요한
‘매년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사망한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위협받는 해양 동물들’, ‘매년 해수면이 높아지며, 갈수록 심해지는 토지 사막화’ 등 생태계의 위기 상황을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래전부터 생태를 위한 예언자적 목소리는 울려 퍼졌지만, 우리 사회는 이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가톨릭 사제이자 생태신학자인 토마스 베리가 “우리가 이 공동체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위험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인간은 지구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오늘 방문한 금고동의 환경 자원 사업소가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시작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생태는 대단히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그렇기에 신학교에서도 영성신학 시간에 ‘찬미받으소서’를 발제하며 회칙의 내용이 단순히 알아야 할 지식을 넘어서서 우리의 영성과 관련됨을 공부했다. 또한 사회교리, 생태신학 등 생태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신학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올바른 분리수거를 비롯해 어떻게 소비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면서도 부족했던 점은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우리 손을 떠나면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편리하고 더 좋은 것을 소비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인간은 자연스레 소비문화에 길들여졌다. 자기가 사용한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쓰는데 무슨 상관인가?’, 편하게 사용한 뒤 ‘내 손을 떠나면 그만’이라는 자기중심적·인간중심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의 부족한 실상을 환경 자원 사업소는 묵묵히 떠안고 있었다. 600~700톤에 해당하는 실로 수많은 쓰레기를 매일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는 매립되거나 소각되며, 인간은 오직 편리하게 사용만 하고 그 부담은 우리의 누이인 지구에게 온전히 내맡겨 버린 것이다
무엇인가를 사용하는 순간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의 깊은 소비 습관으로 정말 깨어있지 않으면 생태적 삶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 과정을 보며 불필요한 이물질 때문에 많은 사람과 생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교육과 실천이 꼭 필요함을 느꼈다. 쓰레기를 다른 에너지로 바꾼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더 본질적으로 그동안 큰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삶의 자리에서 돌아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태운동, 쉽지 않은 길이지만 공동선을 향한 우리의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느꼈다.
생태적 회심
정인영 요한보스코
창세기엔 이런 말씀이 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우리 인류는 땅을 지배하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 들어왔다. 자연은 우리의 형제로서 함께하지 못하고, 소비주의를 위한 도구로써 인류에게 착취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왕직을 주시며 다른 이웃들을 섬기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 받은 왕직을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데 사용했다. 이제금 다시 정립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아들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올바른 왕직을 살아가야 한다. 섬김으로써 땅을 지배하고 온갖 생물들을 다스려야 한다.
생태 활동을 하다 보면 자주 좌절하게 된다. 당장 신학교 안에서 여러 생태 활동을 해도 부정적이다. 생태에 대해 함께하기 위해서는 자발성을 끌어 올려야 한다. 나 역시 많은 생태 운동들을 건의했었고, 같이 동참하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럴 때마다 거부당했었다. 교수회의로 상정되지도 못하고 학생 회의나 반회의에서 막혔던 것들이 많았다. 주된 반대 이유는 경제와 편리성이다. “생태적 회심”을 이루지 않고서는 지금 이 소비주의 사회 안에서 생태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없다. 경제와 편리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장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회는 소비주의 사회이다. 우리 신학교도 어떻게 보면 생태를 외면하고 소비주의를 옹호하고 있었다. 이제는 당연히 누리던 것을 내려놓고 “생태적 회심”을 통해 우리의 형제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적 회심”이다. 회심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적당히 생태를 위해 일할 것이다. 교황님께서는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 가장 고통받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생태적 약자들이다. 전쟁은 가장 큰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자신의 땅이 사라지고 있는 태평양의 작은 섬들의 주민들도 고통받는 이웃들이다. 우리 인류로 인해 소멸하는 여러 동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같은 말씀만 하셨다. ‘회개와 하느님 나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다시 태어나신다면 같은 말씀을 하실 것 같다.
사제로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생태를 위한 정책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회용 쓰레기를 스스로 줄이려는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일회용 쓰레기가 아예 나오지 않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더 좋다. 성당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성당 지붕에 태양광 판넬을 설치해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도 필요할 것이고, 성당에 올 때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잔치 때에 고기 위주의 잔치보다는 국수와 같이 곡류를 이용한 잔치도 생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성당 공동체가 함께 사회가 생태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찾아보면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생태적 회심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신 지배와 다스림을 살아가야 한다.
그 많던 쓰레기는 누가 다 치웠을까
주선우 요셉
이름도 생소한 ‘금고동 자원순환단지’, 방지턱을 넘자마자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은은한 악취가 반기는 이곳은 우리들이 늘상 버리는 음식 쓰레기, 생활 쓰레기, 폐기물들이 모이는 곳이다. ‘생태사목에 관련된 곳인데 왠 쓰레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눈으로 보고 코로 맡는 이 새로운 경험에 집중하려고 했다. 사실 생태환경위원회 건물이 있어서 강의를 듣고 보호를 위한 활동을 견학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곳에서 본 것은 그 어떤 활동의 견학보다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쓰레기 처리에 대한 문제는 다들 집안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대부분 쓰레기가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잊혀진다.”는 활동가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 자원순환단지는 크게 매립장, 소각장, 음식쓰레기 처리장으로 나뉜다. 매립장에서는 도저히 폐기할 수 없는 쓰레기를 땅에 묻고, 소각장에서는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를 소각하여 환경에 문제없도록 처리를 거쳐 연기로 내보낸다. 일부는 열에너지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음식쓰레기는 미생물을 이용하여 열병합 발전소로 보낼 수 있도록 다시 에너지화한다고 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교회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쓰레기를 만든 인간이 다시 그 쓰레기를 에너지화하여 사용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의 발전이며, 경제에도 이바지하는 마인드의 전환인가!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매립장에 수많은 종량제 봉투들을 기억한다. 소각장 앞에서 불타길 기다리는 수많은 플라스틱 병들, 캔들, 비닐봉지들을 기억한다. 음식쓰레기 안에서 나온다던 셀 수 없이 많은 수저들과 봉지들을 기억한다. 설명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자원이 재사용되어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을 강조했지만, 그 아무도 재사용되지 않는 거의 반절의 쓰레기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시설을 위탁 관리하는 곳은 민간 기업이고,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정부의 규제를 지키는 선에서 이윤을 취할 수 있다면 나머지 처리되지 않는 쓰레기들은 그저 문서상 ‘반출’이라는 두 글자로 끝나고 만다. 이게 하느님의 뜻일까?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는 과거 분리수거를 독려하기 위해 개인별 5L 쓰레기봉투를 이용하도록 제도화하기도 했다. 개인이 돈을 내고 쓰레기봉투를 이용하면 더 노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비록 금전거래의 문제로 인해 무료 배급, 제한 배급제로 운용하고 있긴 하지만 만일 돈을 받고 판매했다면? 돈이 많은 사람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경향이 생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자본은 무서워서 모든 것의 선한 의도를 부숴버린다. 지금 내 눈앞의 작은 쓰레기봉투에 귀찮아서 그냥 버린 담뱃갑 몇 개가 보인다. 생태를 위해 감실 앞에 앉기 전에, 내 방의 쓰레기부터 철저히 분리수거하는 것이 더 큰 기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百聞不如一見
김지석 안드레아
학부 4학년 때 부서 업무 중 하나가 학보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회교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보에 우리 학교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기획기사를 준비하였다. 관리과 직원과 함께 고물상, 유리업체, 폐기물 업체 등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학교에서 나오는 물건이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직접 가서 보고 사진을 찍어왔다. 그러나 지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보에 나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또 업체의 요청사항을 전달하며 분리수거를 잘해달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실제로 가서 보아서 그런지 이후 분리수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4학년 때의 기대를 가지고 금고동으로 향했다. 쓰레기 매립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쓰레기 소각장을 실제로 보니 매우 충격적이었다. 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매립 현장을 바라보면서 문뜩 군 생활 당시 훈련을 나갔다가 오래된 라면 봉지가 썪지않고 있는 것을 봤던 게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썪지않은 라면 봉지처럼 매립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쓰레기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환경을 오염시킬지 걱정이 되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에서 200톤의 음식물을 매일 처리한다고 들었을 때 사실 양이 가늠되지 않았다. 나 혼자 버리는 음식물은 조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모이니 매우 큰 양이 됬던 것이다.
놀라웠던 사실은 쓰레기를 활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시설에서 시설의 자랑인 것처럼 홍보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시설의 에너지원은 쓰레기이다. 만일 쓰레기가 없다면 에너지가 생산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시설들은 에너지원인 쓰레기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에서 음폐수가 부족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 개발된 것일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반대로 쓰레기를 생산하도록 만들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기술 발전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우리 지구에게 좋은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진으로 백 번 보는 것보다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번 실습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수히 많은 양의 쓰레기를 보면서 쓰레기를 잘 분리 배출하기보다는 줄이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우리 지구를 살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찬미받으소서’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신다. 여러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사제로 사목하면서 신자들과 함께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을 방문함으로 인해 함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찌하여 ‘쓰레기’를 버리셨나이까?
구평회 알비노
이번에 방문한 대전 ‘금고동 자원순환단지’는 나에게 있어서 이제껏 머리로만 알았던 생태 위기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신부님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고 도착한 이곳은 공기 좋고 물도 좋은 신학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매캐한 후추 가루가 코 안쪽을 뒤덮는 느낌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가 처음 차를 타고 방문한 곳은 매립지였는데 생각보다 냄새가 덜 하고 공익캠페인에 자주 나오는 심각한 장면을 목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보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것 같지는 않은데?’ 하며 대수롭게 넘어갔다.
그런데 나는 ‘음식물처리시설’을 방문하면서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건물을 가득 채운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함께 그곳에서 일하시는 직원분이 업무 중에 겪는 어려움을 듣게 되었을 때, 그제야 나는 쓰레기 처리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시설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마치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행하는 일방적 폭력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직원분이 당부한 말씀을 따라 올바른 분리수거를 위해 붙어있는 사진을 찍고 또 찍게 되었던 것 같다.
‘음식물처리시설’에서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소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 내리자마자 나는 매캐한 냄새가 내 머리를 지끈 지끈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우리는 키가 큰 직원분의 안내를 받아 소각지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견학하였다. 우리는 건물 통로를 지나 쓰레기를 모으는 소각지의 시작점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쓰레기산’이 유리창 밖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다들 카메라를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이후 소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강의실로 돌아가면서 혼자 ‘뭐가 어떻든 간에 쓰레기 처리가 완벽히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견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쓰레기 버리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한 지 모르겠다. 그만큼 오늘 본 광경들이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안 쓰자니 불편하고, 내가 소비하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소비생활을 계속하면 지구는 점점 죽어 나갈 것이고... 여하튼 확실한 돌파구도 정답도 없는 그런 상황에 던져진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필요 이상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옛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아무도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할 때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 따라 행동하였다. 그렇기에 나도 그들이 메시지를 던진 것처럼 먼저 쓰레기를 줄임으로서 그 역할을 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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